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는 루이스(C.S Lewis 1900~1963)는 "우리는 유리알 같은 존재들이다. 그냥 무한정 평범한 보통의 알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알은 부화되거나 썩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무한정 보통의 알로 머물를 수는 없다.
부화되거나 썩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이 말은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삶은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는 "하면 좋은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 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부정적 변화가 아니라 긍정적 변호다.
가롯유다 퍼럼 변화되기도 하고 베드로 처럼 변화되기도 한다.
사울은 바울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사뢰가 변화되어야 한다느니
국가가 변화되어야 한다느니 혹은 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변화의 우선 순위는 나 자신이다. 자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 주위를 변화시킬수 없다.
변화의 출발점은 나로 나 자신 부터다.
흔히들 교회에 오래 다니면 신앙이 좋을 것 같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믿음의 깊이가 신아의 연수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다녔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습관적인 종교생활만을 반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성장하지 못하였기에 변화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많은 것이다.
성경은 성장하지 못한 그리스도인,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무한정 보통의 알로 머물를 수는 없다.
부화되거나 썩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이 말은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삶은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는 "하면 좋은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 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부정적 변화가 아니라 긍정적 변호다.
가롯유다 퍼럼 변화되기도 하고 베드로 처럼 변화되기도 한다.
사울은 바울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사뢰가 변화되어야 한다느니
국가가 변화되어야 한다느니 혹은 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변화의 우선 순위는 나 자신이다. 자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리 주위를 변화시킬수 없다.
변화의 출발점은 나로 나 자신 부터다.
흔히들 교회에 오래 다니면 신앙이 좋을 것 같다고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믿음의 깊이가 신아의 연수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다녔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습관적인 종교생활만을 반복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성장하지 못하였기에 변화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많은 것이다.
성경은 성장하지 못한 그리스도인,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